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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사 회원들과 함께한 덕수궁 가을여행

2019.10.14 32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12일, 전북겨레하나 회원들이 서울 덕수궁을 찾았습니다. 

나라의 근대화를 이루겠다는 대한제국의 벅찬 희망과 결기가 일제의 야만에 짓밟혔던 역사 현장에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울려퍼지는 대한문을 지나 문화해설사를 만났습니다. 덕수궁의 고느적함을 뒤흔드는 소음 때문에 한참을 안쪽으로 걸어서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 갔던 선조가 잠시 머물던 시절부터 나라를 빼앗기고 폐위 당한 고종이 쓸쓸히 죽어갔던 시기까지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였습니다. 중화문 중앙에는 봉황 대신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었고 중화전 문 역시 조선시대 궁궐의 붉은 색이 아닌 금색 칠을 하였습니다. 황제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이겠지요. 근대적이고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고종의 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궁궐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이층 형태의 목조 건물 석어당은 임진왜란 때 피난길을 떠났던 선조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거처한 곳입니다. 전란 중에 수도를 버리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한 나라의 왕이 불타버린 궁궐 대신 이렇게 소박한 곳에서 지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함녕전은 을사늑약 이후 고종이 서거할 때까지 침전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1904년 이곳에서 큰 불이 나 덕수궁이 불타기도 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쓸쓸하게 지내던 왕의 한이 깊이 서려 있습니다.  

서구식과 전통 양식이 결합된 정관헌이 아름답습니다. 고종은 이곳에서 손님을 맞기도 하고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고종은 근대 문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건축한 석조전은 1910년 완공된 서구식 건물로 덕수궁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기면서 고종은 태상황으로 물러났고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궁궐로서 사용되지 못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의 좌절된 꿈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석조전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이곳이 오늘의 인증샷 포인트!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에도 가보았습니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무장한 군인들을 대동하고 고종을 겁박하였습니다. 고종이 끝내 거부하자 외무대신 박제순으로 하여금 협정문에 서명하도록 했습니다. 참정대신 한규설이 이를 끝까지 반대하자 중명전 마루방에 감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종이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던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외세에게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의 길을 간 사람들, 주권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의 삶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지금 광화문 일대를 성조기로 뒤덮고 있는 이들과 서초동 촛불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아오늘 길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다운 포즈를 취해보기도 했습니다. 잠시나마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는 이 순간이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이 되길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기 위함이지요. 그 길을 만들고 있는 현장에도 함께 했습니다. 정의와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이야말로 그 옛날 대한제국이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이루는 길이라 확신하며 비로소 광장에서 참의미를 찾은 태극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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